통제된 낙원의 서늘한 위화감
'파라다이스 펑크’를 정의하며
2026. 11. 05
시작은 파란 하늘과 낙원이었다.
추상적인 잔상을 하나씩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기호와 상징들이 쌓여갔다. 그것들은 본래 의미와 상관없이, 오래전부터 내 안에서 특정 감정으로 자리 잡은 이미지들이었다. 이 요소들이 모여 하나의 세계관을 이루기 시작했다.

▲ 나의 취향과 기호를 모아 하나의 세계관을 가진 이미지를 완성했다.
원래는 사이버펑크를 염두에 둔 작업이었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기억과 정체성은 어디서 오는가"를 묻는 장르의 철학과 풀어내는 방식에 깊이 끌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고민이 찾아왔다. 흔히 사이버펑크라 하면 비에 젖은 네온사인과 무너진 도시 같은 디스토피아를 먼저 떠올리지만, 내가 그리는 화면은 정반대의 풍경을 품고 있었다. 너무나 정갈하고 맑은, 완벽한 낙원이었다.
새로운 장르의 이름이 필요했다. ‘파라다이스 펑크(Paradise Punk)’
이곳에서는 폭력적인 파괴나 거창한 전쟁을 다루지 않는다. 대신 완벽한 낙원 안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오류, 개인의 기억 왜곡, 그리고 그 균열 속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자아의 흔적을 쫓는다.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만드는 것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선 하나에 담긴 인간적인 머뭇거림이라 믿기 때문이다.
하나의 세계관을 세우는 일은 몇 장의 근사한 일러스트를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완성되지 않았다. 공간의 수치, 인물의 구도, 도구의 작동 방식까지 생태계 전체를 조율하는 고단한 설계의 시간이 필요했다.
이 공간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정교한 설계도였다. 그 안에서 자연스러운 생태계가 만들어지길 바랐다.
앞으로 이곳에 '파라다이스 펑크'라는 장르가 만들어져 간 빽빽한 기록들을 하나씩 남기려 한다. 손쉽게 소비되는 이미지들이 넘쳐나는 때에, 작업 뒤에 숨어 있던 고민의 궤적을 차분히 함께 따라와 주면 좋겠다.
더 마인드 패러사이트 《 THE MIND PARASITE 》